필자가 바라본 이명박 정권 1주기,,,
대부분의 경우, 요즘 우리네 삶에서 무엇을 깊게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꼭 집어서 제 2의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먹고 사는 생업 문제에 집중하느라 그렇다는 말을 내뱉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업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무한정 바쁘다. 바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서까지 멍한 상태에 빠지거나, 오늘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는 탓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른 아침 눈을 뜬다.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다음 허겁지겁 씻거나 먹으면서 출근준비를 한다. 화장실에 앉아서 일을 볼 때는 신문이라거나 잡지를 들고 간다. 하찮은 읽을꺼리라도 없이 맹한 눈으로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은 이상하다. 휴대폰이 담긴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집을 나선다. 진동이 온다. 버스라든가 지하철을 타면 죄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밀린 텔레비전을 본다. 종일을 격무에 시달린다. 퇴근한다. 퇴근길에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도 모조리 바쁘다. 창너머 보이는 휘트니스 쎈터의 런닝머신을 달리는 사람들은 죄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달린다. 집에 오면 거실의 텔레비전을 켠다. 보지 않더라도 켠다. 온갖 통계수치로 포장된 각종 뉴스들이 의미없이 허공을 날라 다닌다. 잠시라도 머리를 비우고 나만의 시간으로 빠져드는 것은 거의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그러다가 아내의 생일을 잊어먹거나 결혼기념일을 깜빡한다. 핸드폰이나 켬퓨터 메신져에 따로 기념일을 저장해두지 않았다가는 낭패다. 그래도 대통령의 취임 일주년이나 이주년 같은 기념일은 잊어먹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니 잊어먹어도 각종 뉴스매체들은 친절하게도 기념일이라고 알려준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일 년이 지났다는 것을 그렇게 알았다.
솔직히 이런 기념일에 정치, 경제, 문화, 외교에 걸친 각 영역에 대한 지지도와 점수를 복잡한 수치로 보는 것은 일종의 스트레스, 아니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가령 지난 1년간 살림살이 나빠졌다는 사람이 53%를 넘는다는 그런 통계, 70%이상이 이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그런 통계! )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치른 고3 수험생이 자기 성적표에 기록된 수능점수를 확인 것에 버금가는 고통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 반면 또 어떤 통계 수치는 쉽게 기억에 남고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원외 정당인 진보신당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소주 출고량은 125만 3천 538kl 로 전년에 비해 5만 9천 338kl 가 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요 상장 영어교육업체의 매출은 전년대비 무려 50%나 증가했고, 지난해 3분기 가구당 평균 학원 교습비는 15.5%나 증가했단다. 달랑 이것만이 아니다. 작년에 방화로 인한 화재건수는 전체 화재의 81.2%인 799건이었다!
그렇다면, 이랬을까? 부모들은 아이들 공부시키느라 뼈빠지게 일하고, 그게 힘들어 소주를 들이키고 그래도 사는 게 팍팍하고 탈출구가 없어서 방화까지하며 분풀이를 했나?
몇 년 지난, 2002년(월드컵이 있었고, 한국의 4강 진출이 있어, 전국민이 흥겨웠었다.)의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남녀 6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32.4%가 알코올 중독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실, 이 알코올중독이라는 말은 프랑스의 보들레르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산업혁명 이후의 당시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을 감당해야 했는데, 이 고통을 잊으려 반복적인 폭음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가 1858년 보들레르의 [인공낙원Paradis artificiel]이 출간되자, 이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처음 사전에 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알코올 중독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지,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그의 저서『알코올과 예술가』(원제『Se noyer dans l'alcool?』)에서 보들레르가[인공낙원]을 출간하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전에 실린 1858년을 기준으로 현대문학과 그 이전 세대의 문학을 구분짓기도 하였다.
그런 [인공낙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책의 한 꼭지인 <여행에의 초대>에서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한 여인과 함께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사람들이 코카뉴나라고 부르는 기막히게 화려한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요하며 고요하고 정직합니다. 그곳에는 사치함이 질서 속에 빛나는 즐거움을 누리며, 생명이 숨쉬기에 부드럽고 또 비옥한 나라입니다. 무질서와 소란, 뜻밖의 일 등은 이 나라로부터 제거된 듯, 행복이 고요함 속에 조화되어 있고 음식조차도 시적이며 기름지고 동시에 자극적인 이 나라, 나의 귀중한 천사여, 이 모든 것이 당신을 닮고 있오. ……그대는 추운 가난 속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이같은 열병을 아는가? 이같은 미지의 나라에의 향수를, 이같은 호기심어린 고통을? 그것은 당신을 닮은 나라에의 향수요.…… 생명이 부드럽게 숨쉬며 행복이 정적 속에 조화된 나라, 바로 그곳이요, 가서 살아야할 곳도 그곳이며 죽어야할 곳도 그곳이요!그렇소.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하오……저쪽, 그곳은 시간들조차 더욱 느리며 시간은 더 많은 생각을 함유하고 있오. 시계들조차 그곳에서는 더욱 깊고 의미깊은 엄숙함 속에 행복을 울려준다오. ”
새삼 우리에게 그런 [인공낙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추운 가난속에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일까? 하여간, 그곳에서는 시간들조차 느리며 여유롭고,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닮은 그런 곳이다. 그러기에 살아야 할 곳도, 죽어야 할 곳도 거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곳이라면 지금처럼 바쁘지 않아도 더 이상 춥고 가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중한 기념일을 놓치고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