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심판대에 선 '덜 나쁜 놈'을 고르며...
  • "씁쓸한 오늘, 한 표의 무게"
  • <한국언론미디어그룹 한성영 회장>
    지금 우리는 참으로 유례없는 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임기 도중 그것도 비상계엄 선포라는 헌정 질서 파괴 시도와 그로 인한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끝에 맞이한 선거입니다.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못한 씁쓸한 현실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이 선거는 단순히 다음 5년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지난 정권의 실패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던 행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를 목도한 뒤 다시 한번 그 권력을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는 분노나 실망감을 넘어 무너졌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금 나라의 기강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함석헌 선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함석헌 선생은 평생을 사회운동가 언론인 재야운동가로 활동하시면서 '씨알'(Ssial) 즉 민중의 각성과 힘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에게 투표는 단순히 제도적인 절차를 넘어 이 '씨알'들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고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놈이 그놈" 같다고 투표를 포기하지 말라던 어쩌면 현실 정치에 대한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분의 외침 말입니다.

    완벽한 후보는 없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서 그래도 '덜 나쁜 놈'을 고르는 행위야말로 혼탁한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다 해 먹는' 최악의 상황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선택지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후보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함석헌 선생이 강조하셨던 '씨알', 즉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민중으로서 우리의 책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비록 씁쓸한 마음으로 '덜 나쁜'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할지라도 그 행위 자체가 무관심이 불러올 최악의 결과를 막고 우리 스스로 역사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던지는 한 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상계엄이라는 폭거를 거부하고 탄핵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내린 국민 주권의 확인이며 다시는 이 땅에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굳은 약속입니다.

    또한 이 혼란을 딛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희망이자 의지입니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의미를 지닙니다. 과거에 대한 심판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이며 절망 속에서도 '덜 나쁜' 선택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우리의 고단한 노력입니다.

    투표장으로 향하는 당신의 그 발걸음이 그리고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하는 당신의 손길이 바로 무너졌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가장 확실한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씁쓸하더라도 이 중요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은 모든 '씨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글쓴날 : [25-05-29 14:56]
    • 한성영 기자[bar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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