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가'번이면 당선? '연고 없는 깃발'에 우는 “텃밭의 민낯”
  • 30년 지방자치, 이제는 중앙 정치의 '하수인 줄세우기' 끊어내야
  • 중앙뉴스라인 한성영 기자
    <중앙뉴스라인 한성영 기자>
      지방선거와 지역 정치는 본래 '주민의 잔치'여야 한다.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아는 일꾼을 뽑고 골목길의  변화를 기대하며 축제처럼 치러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가 공고한 호남과 영남의 선거 현장은 잔치는커녕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본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중앙당의 손가락 끝에서 사실상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투표 용지에 '가, 나, 다' 순으로 기호가 찍히는 기초의원 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 '가'번을 받아 든 후보들은 벌써 당선인이나 다름없는 표정이다. 

    특별히 열심히 선거운동을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당선될 터이니 유권자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공천권을 쥐고 흔드는 '높으신 분'의 눈치만 살피면 그만이다.

    공천 과정의 잡음은 이제 고질병이 됐다. 전과가 있는 후보가 버젓이 경선에 오르는가 하면 돈봉투 살포 의혹이 꼬리를 문다. 심지어 모바일 여론조사 기간에 글씨가 잘 안 보이는 어르신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대리 투표를 했다는 흉흉한 소문과 폭로가 선거철마다 반복된다.

    더 큰 문제는 중앙당 지도부가 지역 유권자를 바라보는 오만한 시선이다. 이번 광주 광산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과정이 단편적인 예다. 

    해당 후보는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을 뿐 평생의 주요 행적과 생활 기반은 서울에 둔 인물이었다. 지역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후보임에도 중앙당 지도부는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그를 내리꽂았다. 

    지역 지식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우려를 표명했으나 중앙당은 끝내 귀를 닫았다. 

    "호남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니 우리 사람을 보내 지분을 챙기겠다"는 사실상 지역을 하수인 삼으려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오만함은 비단 한 정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대편 정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이나 부산·경남(PK) 등 영남 지역 역시 선거철마다 똑같은 진통을 겪는다. 

    평생 서울에서 검사 고위 관료 정당 관료로 권력을 누리며 살다가 선거 직전 고향이라는 해묵은 연고 하나만 달랑 들고 내려와 공천을 받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지역에서 수십 년간 바닥을 다져온 토박이 정치인들은 중앙당 낙하산 인사 한 명에 맥없이 밀려나고 주민들은 선택권을 박탈당한다. 양당 모두에게 텃밭은 그저 '중앙 권력의 논공행상용 전리품'에 불과한 셈이다.

    올해로 지방자치가 부활해 선거를 치른 지 서른 해를 맞이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국회의원이 다음 총선을 위해 자기 식구를 단체장과 지방의원에 앉히고 그들은 또 2년 뒤 국회의원 선거의 사조직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또 2년 뒤, 국회의원은 자신을 도운 이들에게 다시 공천권으로 보답한다. 이 지독하고 끈질긴 '2년 주기 카르텔' 속에서 정작 진짜 주인인 주민은 소외되어 있다.

    이제는 정당정치의 탈을 쓴 이 헤괴한 풍토를 뜯어고쳐야 한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의 입김을 원천 차단하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또한 노령층을 기만하는 대리 투표를 막기 위해 경선 시스템에 생체 인증을 도입하거나 공천 과정 자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는 등 제도적 브레이크가 시급하다.

    지역 정치인은 중앙 정치의 '시다바리(조수)'가 아니다. 공천 명표가 당선 보증수표가 되는 오만한 선거 문화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 지역 정치는 고인 물을 넘어 썩은 물이 될 수밖에 없다. 

    중앙당이 유권자를 '투표하는 기계'로 여기며 내려보내는 낙하산 공천에 언제까지 순응해야 할까? 입법기관들이 스스로 이 기득권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이제는 유권자들이 먼저 그들의 손을 매섭게 내리쳐야 할 것이다.
  • 글쓴날 : [26-05-29 15:29]
    • 중앙뉴스라인 기자[news_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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